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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나는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을 읽으며

류용효 / 류용효컨셉맵연구소

얼마 전 테슬라 모델3를 예약했다. 주변에서 왜 테슬라를 선택했느냐고 물으면 사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동차의 완성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가 산 것은 어쩌면 자동차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에 가깝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발전하고 기능이 추가되면서 오늘 산 자동차가 내일 조금 다른 자동차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특히 FSD(Full Self-Driving)에 대한 기대가 그렇다. 현재 FSD는 운전자가 지속적으로 감독하고 필요할 때 개입해야 하는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다. 그러니 현재의 기술만 놓고 “완전자율주행 자동차를 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동차가 이미 이 정도까지 운전자를 보조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재미있다. 나는 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능의 미래를 믿고 자동차를 예약했을까. 바로 이것이 ‘고객이 얻고 싶은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고객은 언제나 현재의 기능만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능성을 사고, 기대를 사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산다. 물론 그 기대가 현실이 되지 않으면 실망도 커진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무서운 개발 속도를 보고 있으면 앞으로 전 세계 자동차 회사의 개발 주기도 더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새로운 기능은 더 빨리 등장할 것이고, 운전자의 실수를 줄여 사고를 막아주는 기술도 발전할 것이다.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경쟁은 반갑다. 결국 기술 경쟁의 결과가 사람이 덜 다치고 더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김태훈 저자의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을 읽었다. 책 옆에는 늘 그렇듯 노란 메모장을 놓았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었고, 마음에 걸리는 문장에서는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잠시 멈췄다. 다 읽고 메모를 다시 보니 재미있게도 ‘AI 시대’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는데 내가 가장 많이 적은 단어는 AI가 아니었다. 고객, 마케팅, 영업, 이익, ROI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고객’이라는 단어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제조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계공학을 공부했고 자동차 시트를 설계했다. 이후 솔루션 회사로 옮겨 CAD와 PLM을 접했고 제조기업의 제품개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다루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렇게 30년 넘게 일을 했으니 엔지니어링은 이제 직업이라기보다 내 사고방식에 가깝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복잡하면 구조화하고, 프로세스를 그리고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무엇인가 이상하면 “왜?”라고 묻는다. 나는 그렇게 살아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아직도 엔지니어링에 많이 머물러 있다. 고객을 수도 없이 만났고 제안서를 쓰고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마케팅, 영업, 이익 같은 단어들은 늘 내 관심의 중심에서 반걸음쯤 떨어져 있었다. 좋은 기술을 선택하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질문을 살짝 바꾸었다.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객은 진짜 무엇을 얻고 싶은가’였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싶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고객이 반드시 좋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고, 기능이 많다고 가치가 그만큼 커지는 것도 아니다. AI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자동화 범위가 넓어졌다고 고객이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책 표지에 있는 ‘선택이 쉬워지고, 예측이 가능하며, 불안이 줄어드는 경험’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오래 남았다. AI를 이야기하는데 AI 기술에 관한 단어가 없다. 선택, 예측, 불안. 모두 사람의 마음에 관한 말이다. 그래서 메모장에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은 뭘까?’라고 적었다가 그 밑에 다시 ‘그런데 고객은 누구지?’라고 적었다. 제조기업만 보더라도 실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설계자와 팀장, 구매 담당자와 CIO,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경영자가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설계자는 필요한 데이터를 빨리 찾고 싶을 것이고 팀장은 일정과 품질을 보고 싶을 것이다. 경영자는 결국 “그래서 얼마를 투자해서 무엇을 얻는데?”라고 묻는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쉽게 ‘고객’이라는 한 단어 안에 서로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을 집어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서 잠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샌다. 요즘 AI를 쓰면 쓸수록 가끔은 내가 AI를 사용하는 것인지 AI에게 길들여지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을 보면 예전에는 “어떻게 만들었을까?”가 궁금했는데 요즘에는 “어떤 AI를 썼을까, 무슨 프롬프트를 줬을까?”부터 생각한다. 클로드 코드 같은 도구로 만든 화면을 여러 개 보다 보면 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화면 구성도 비슷하고 패턴도 익숙하다. 순간 ‘결국 클로드만 부자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불편하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대신 결과물들이 비슷해진다면, AI가 사람의 재능 장벽은 낮추었지만 사람의 생각까지 비슷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다시 고객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AI가 고객에게 주어야 할 것이 더 많은 정보일까. 나는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택지가 아니라 선택하기 쉬운 상황일 수 있다. AI가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는지를 묻기보다 AI 덕분에 고객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일일이 찾지 않아도 되고,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입력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마지막에는 ‘내가 잘못 고른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까지 조금 줄여주는 것. 좋은 AI는 자신의 능력을 고객 앞에서 자랑하는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 신경 써야 할 것들을 뒤에서 하나씩 없애주는 기술인지도 모른다.

나는 얼마 전 『기획자의 시대가 온다』라는 책을 썼다. AI와 바이브코딩을 직접 경험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 가운데 하나는 ‘실행이 쉬워질수록 방향을 정하는 사람의 가치가 커진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프로그램 하나를 직접 만들려면 개발자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지금은 AI와 대화하면서 상당한 수준까지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1990년대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한 시대를 상징했다면, 요즘 나는 가끔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세상은 넓고, 실현할 생각은 많다.” 생각을 실제 결과물로 만드는 장벽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정하는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을 읽으면서 내가 쓴 책의 문장 뒤에 하나를 더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행이 쉬워질수록 방향이 중요하다. 맞다. 그런데 그 방향은 어디를 보고 정해야 하는가. 결국 고객이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를 위해 왜 만드는가’를 알아야 한다. AI가 코드를 만들어주고, 그림을 그리고,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작성해주는 시대에는 이것이 더 중요해진다. 실행비용이 낮아졌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를 빨리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더 빨리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향이 틀렸는데 속도만 빨라지면 목적지에서 더 멀어진다. 그래서 내가 『기획자의 시대가 온다』에서 이야기한 기획자의 역할도 이제 한 단계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AI 시대의 기획자는 AI를 잘 사용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 때문에 불편해하고, 무엇 때문에 망설이고, 무엇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기업의 AI 도입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은 정말 빠르게 변했다. 나부터도 AI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자료를 찾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전에는 전문가에게 부탁했을 일을 직접 해본다. 같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데 기업은 어떤가. AI를 도입했다고 매출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고 회사 전체가 하루아침에 스마트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서 개인의 업무량만 늘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AI가 개인의 생산성을 올리는 것과 기업의 성과를 올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가트너가 에이전트형 AI 프로젝트 상당수가 비용 상승, 불분명한 비즈니스 가치, 부족한 위험 통제 등의 이유로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기술이 작동한다고 사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멋진 데모가 나온다고 현업의 업무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PoC가 성공했다고 매출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경영진이 무엇을 바꿀 것인지 정하고 기존 업무 프로세스와 연결하고 성과를 측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기업이 AI의 효과를 보려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경영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AI 솔루션 하나 사서 직원들에게 계정을 나눠주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특히 R&D에서 AI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현장에서 결국 나오는 질문은 아주 짧다. “쟤, 믿을 수 있어?” 아무리 생성 속도가 빠르고 대답을 잘해도 설계 데이터가 틀리고 계산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 엔지니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질문 역시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고객의 불안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고객은 AI가 얼마나 똑똑한지보다 자신의 중요한 판단을 맡겨도 되는지를 묻는다. 엔지니어에게는 정확성이 신뢰이고, 경영자에게는 ROI가 신뢰일 수 있으며, 일반 소비자에게는 예측 가능한 경험이 신뢰일 수 있다. 결국 AI의 가치는 기술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이 믿을 수 있을 때 만들어진다.

나는 가끔 지난 몇 년간 쏟아졌던 AI에 대한 예측들을 되돌아본다. 맞은 것도 많다. AI를 활용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게 됐고, 기업은 신입 채용을 줄이거나 일부 업무를 AI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림과 음악, 코딩처럼 재능과 훈련이 필요했던 영역의 진입장벽도 크게 낮아졌다. 뛰어난 개발자는 AI를 여러 명의 조수처럼 활용하며 훨씬 큰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AI 반도체와 인프라 기업들은 전에 없던 호황을 맞았다. 인간이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과학의 난제를 AI가 풀어내는 장면도 실제로 보고 있다.

반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부분도 있다. AI가 있다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의 생산성이 올라간 만큼 기업의 매출이 비례해서 증가한 것도 아니다.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AI를 오래 사용할수록 ‘AI가 만능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처음에는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해주는 것이 신기했지만, 지금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어쩌면 AI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만나면서 이제야 진짜 AI 시대가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내가 조금 부족했던 이야기로 돌아온다. 마케팅, 영업, 이익, ROI다. 나는 이것들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내 주제의 중심에 놓지 않았다. 좋은 기술을 선택하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은 영업이나 마케팅의 몫이라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선을 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기술도 고객이 선택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고객이 가치에 돈을 지불해야 매출이 생기고, 비용을 제외한 이익이 남아야 다시 사람과 기술에 투자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 책은 그 당연한 것을 내 문제로 가져왔다.

ROI 역시 제안서에서 수도 없이 봤지만 내가 주로 물었던 것은 “이 시스템을 어떻게 잘 구축할 것인가”였다. 이제는 그 앞에 “그런데 왜 구축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붙여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래서 고객에게 무슨 가치가 생기지?”, 마지막에는 “고객은 왜 여기에 돈을 지불해야 하지?”가 와야 한다. 이 질문까지 가면 기술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좋은 기술과 좋은 비즈니스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그 사이에 고객이 있고 마케팅이 있고 영업이 있고 가격과 이익이 있다.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은 바로 내가 상대적으로 덜 공부했던 그곳을 콕 집었다.

그러다 또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은퇴 이후가 떠올랐다. 아직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회사 안에서는 회사 이름이 있고 제품이 있고 영업조직이 있고 고객이 있다. 계약과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잘하면 됐다. 그러나 언젠가 그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30여 년 동안 쌓은 경험을 누가 필요로 하는지 내가 찾아야 한다. 무엇을 제공할지, 얼마를 받을지, 어떻게 알릴지, 어떻게 팔지 내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익이 남아야 그 다음 일도 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그동안 내 관심에서 반걸음 떨어져 있던 마케팅과 영업과 이익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AI를 공부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제는 하나가 더 보인다. 은퇴 이후를 준비한다는 것은 새로운 AI 도구를 하나 더 배우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경험을 누군가에게 필요한 가치로 바꾸는 법, 그 사람을 찾는 법, 가치를 설명하는 법, 가격을 정하는 법, 그리고 그것을 지속 가능한 일로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결국 다시 고객이다. 고객이 누구인지 모르면 30년의 경험도 그냥 나의 추억일 뿐이다. 누군가의 문제와 만나는 순간 비로소 가치가 된다.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에는 AX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과 실행 방법, ROI, 조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나는 그것을 이 칼럼에서 자세하게 요약하지 않으려 한다. 궁금한 분은 책을 직접 보시면 좋겠다. 나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책의 내용을 몇 줄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내 메모장에 생긴 질문들이었다. 우리 회사는 왜 AI를 하려고 하는가. AI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PoC가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현업이 쓰지 않는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고객의 선택은 쉬워졌는가. 고객의 불안은 줄었는가. 그리고 결국 고객은 왜 이것을 선택하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

요즘 나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AI에게 정말 많이 물어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들었다. AI에게 백날 물어봐도 나오지 않는 것이 있다. AI가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케팅을 물으면 AI는 마케팅을 설명하고 ROI를 물으면 계산법을 알려준다. FSD를 물으면 기술 수준과 한계를 정리해준다. 하지만 왜 지금의 내가 마케팅을 공부해야 하는지, 왜 30년 넘게 엔지니어로 살아온 내가 고객과 이익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 회사 밖에서 살아갈 다음 10년을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는 내가 질문하지 않으면 답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AI 시대인데도 말이다. 아니, AI 시대라서 더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AI는 내가 던진 질문에 놀라운 속도로 답하지만 좋은 책은 가끔 내가 던지지 않은 질문을 내 앞에 툭 내려놓는다.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이 내게 그랬다. AI에 관한 책인 줄 알고 펼쳤는데 고객을 생각하게 됐고, 고객을 따라가다 마케팅과 영업과 이익을 만났으며, 거기에서 다시 내가 쓴 『기획자의 시대가 온다』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끝내는 은퇴 이후의 나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기획자의 시대가 온다』를 쓰면서 그 질문은 “AI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기획해야 하는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번 책을 읽고 나니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실행이 쉬워질수록 기획이 중요하고, 기획이 중요해질수록 고객을 이해하는 힘이 중요하다. 세상은 넓고 이제 실현할 생각도 많다. 문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된 시대에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이고, 더 어려운 문제는 그것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책을 덮고 노란 메모장을 다시 펼쳐봤다. 글씨는 엉망이고 화살표와 동그라미, 물음표가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었다는 흔적보다 책 때문에 내가 다른 생각을 했다는 흔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엔지니어이고 엔지니어로 살아온 시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 정체성을 버릴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제는 기술을 이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기술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가 되는지를 이해하고 싶다. 좋은 것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지, 왜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왜 돈을 지불하는지까지 알고 싶다.

이 책은 내가 부족했던 바로 그 부분을 꼭 찍어 알려주었다. 그래서 조금 뜨끔했고, 그래서 고마웠다. 그리고 이상하게 다시 공부하고 싶어졌다. AI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뜻만은 아니다. 고객을 공부하고, 마케팅과 영업을 공부하고, 이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마 은퇴 이후에도 무언가를 계속 기획하고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려면 결국 알아야 할 것들일 것이다.

테슬라 모델3를 예약하면서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돈을 걸었다. 『기획자의 시대가 온다』를 쓰면서는 실행하기 쉬워진 미래에 기획자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AI 시대 고객이 진짜 얻고 싶은 것』을 읽으면서 이제 그 두 생각 사이에 ‘고객’이라는 단어를 놓게 됐다. 미래에 대한 기대도 결국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되어야 하고, 기획도 결국 누군가의 선택과 불안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남은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나는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30년 넘게 기술을 다루고, 이제 AI까지 만난 뒤에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런 질문을 한다.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괜찮다. 아직 일을 하고 있고, 아직 궁금한 것이 많고, 무엇보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진짜 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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