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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O

바르셀로나 스토리

PLM리스너 2014. 10. 1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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젼혀 보지 못할 곳 같은 바르셀로나를 우연찮게 일 때문에 두번씩 방문한 건 행운 있었다. 

지난번에는 1월 겨울을 보냈고, 이번에는 10월 좋은 날씨 였다. 


두번씩이었지만 바르셀로나를 자세히 알아 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좀더 자세히 알아보았다(역시 위키사이트에서 정보를 자세히 얻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Barcelona)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인구는 1,583,256 명(2003년), 면적은 100.4 km²이다. 도시의 명칭은 고대 페니키아어인 '바르케노(Barkeno)'에서 유래하였다. 1992년 하계 올림픽이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은 작은 몬테타베르 언덕 위에 서 있는데, 로마 시대의 성벽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1289년에 시작해 15세기말에 완공된 고딕 양식의 대성당에는 6세기에 지은 바실리카가 있으며 이밖에도 산타마리아델마르 교회를 비롯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왕궁과 주교관은 바르셀로나 시와 아라곤 왕국의 기록보관소로 사용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는 60m 높이의 기념탑과 1882년에 착공하기 시작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 등은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아직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투각세공으로 장식한 높은 첨탑이 돋보이는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카탈루냐의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으로 인하여 대대적으로 파괴되었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적으로 산업화가 잘 되어 스페인 제 2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는 남동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완만한 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베소스 강과 요브레가트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평야지대로 산으로 둘러싸여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제조업·조선업·관광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중장비기계·화학제품·섬유 공업은 카탈루냐 지방 산업활동의 중추로 스페인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 이곳에 있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100개가 넘는 정기선이 바르셀로나와 세계의 주요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가로수가 늘어선 넓은 도로들로 이루어진 람블라스 거리가 옛 시가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람블라스 거리의 북쪽은 상업지역인 카탈루냐 광장까지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파세오마리티모와 해안에 이른다. 북쪽에는 신시가지인 엔산체('확장'이라는 뜻)가 있고, 공업지역은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너머에 펼쳐져 있다.

도시교통은 지하철·지하도·버스·케이블카·간선도로를 비롯한 고속 여객수송망으로 편리하게 이루어진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교외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프랑스로 이어지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바르셀로나 국제공항이 있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다.

카탈루냐어는 오랜 문학적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이 지역의 정치·사회·문화의 역사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바르셀로나 대학교(1450)와 바르셀로나 자치 대학교(1968)가 있다. 카탈루냐 중앙도서관, 대학도서관, 시립 정기간행물도서관, 카탈루냐 미술관·해양박물관, 피카소 미술관 등이 있다.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인 FC 바르셀로나와 RCD 에스파뇰의 연고지이다. 그리고 그중 FC 바르셀로나가 가장 유명한데, 레알 마드리드 CF와 라이벌이다.

부산과 자매도시를 맺고 있다. 그밖에도 보스턴,이스탄불, 상하이, 오사카, 요코하마와 자매도시를 맺고 있다. 


우리가 머문 곳 근처의 해변은 ... Lievant..



Balearic Sea를 바라보며. 





catedrtal de barcelona

 바르셀로나의 메트로폴리탄 성당 대성당.  성당은 사실상 교구 '주교의 거주를 단어 cathedra (좌석)에서 유래하고있다. 그가 가르치고 충실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 장소. 

바르셀로나의 웅장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의 건축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사원의 사이트에, 1298년 5월 1일에 시작했다. 작업 150 년간 세 단계에서 실시 하였다. 많은 종교 건물에 대한 사실로서, 건설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90 미터 높이의 cimborio이 검게 돔이, 청소 제단 적응, 조명 설치 및 아카이브가 개조 된 된 1969 년에 1913 년까지가는 ​​동안 주요 외관은 19 세기 말에 제기했다. 이러한 작업은 바티칸 공의회에서 확립 된 지침에 따라 수행 하였다. 외관과 cimborio은 2004 년과 2012 년 5 월 사이에 복구되었다; 그 작업은 아직 완료하고 지붕과 종탑의 복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해마다 3백만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시청 ... 



점심식사와 함께 ...


구엘 공원(1900-1914) 가는 길...

















안토니 가우디 이코르네트(카탈루냐어: Antoni Placid Gaudí i Cornet1852년 6월 25일 - 1926년 6월 10일)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건축가이다.

기록된 그의 정식 이름은‘안토니 플라시드 기옘 가우디 이 코르넷이다. Antoni Plàcid Guillem Gaudí i Cornet’이다. 아버지쪽 가문은 프랑스계의 가우디 집안이고, 어머니쪽이 코르넷 가문이다. 안토니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74세를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단명한 것은 아니나, 젊어서 가족의 대부분을 잃고 쓸쓸한 인생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밀라 주택바트요 주택구엘 저택구엘 공원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을 설계했다. 19세기말 카탈루냐 지역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가우디는 1883년부터 40년 이상을 이 교회의 건설을 책임졌으며, 말년의 15년간은 여기에만 매진했다. 1935년 스페인 내전으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다시 재개되었다. 1926년 가우디가 죽은 후 미완성 건물 일부와 성당 모형이 스페인 내전 와중에 부서지기도 했다.













스페인 와인을 원없이 ...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외국 친구들 ... 





글로벌 서비스팀과 함께...








콜롬부스 동상...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에스파냐로 갔다. 당시 에스파냐는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상태였다.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1. 기사와 제독 작위
  2.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
  3.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일

이라는 실현 가능성없는 조건을 제시하자 포르투갈에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교회의 성직자들은 포르투갈교회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고, 때문에 콜럼버스를 위해 여왕을 설득했다. 결국 이사벨이 콜럼버스를 등용하였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였고, 그가 발견하는 것의 10%를 콜럼버스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 하에 선박 2척(핀타호와 니나호) 을 내주고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 모집에도 협력해 주었으며, 또 팔로스항(Palos)에 사는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의 선박인 산타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하였다.

계약 후에도 이사벨 여왕이 계속 지원을 미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항해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나 되었다.

그가 탐험을 시작한 것은 당대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사명인 기독교의 전파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이 아닌 각종 향신료의 수입을 위한 인도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금과 보물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그의 항해일지를 보면 금과 보물에 대한 언급이 10일 분량에 수백 차례나 등장한다. 또한 이사벨 여왕과의 계약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의 축적이었다. 그는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였는데, 아메리카에 상륙한 것은 그 가운데 제1항해의 일이다.




몬주익성 

몬주익은 ‘유대인의 산’이라는 의미로, 한 때 유대인들이 모여서 살았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사용되었던 주경기장과 함께 각종 스포츠 시설들이 있으며, 스페인 마을과 미로 미술관, 까딸루냐 미술관, 몬주익 성 등이 있다. 몬주익 성 Castell de Montjuic  등이 있다.
몬주익 성은 1640년 펠리페 4세에 대항한 반란군들에 의해 세워졌다. 오늘날 이 성은 1960년 프랑코 총통의 지시로 프레데렉 마레스가 수집한 무기들이 전시된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쥬익 경기장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거머쥔 역사의 현장...


분수대가 너무 아름답다. 저녁이면 음악에 맞춰 분수대가 춤을 춘다. 










때 마침 옥토버 페스티벌이 열렸다.  



열기속으로... 


젊음의 열기속으로... 





소주의 향기... 



다양한 와인이 정말 저렴하다. 비싼 것도 10유로 넘는 것이 별로 없다.



와... 냉장고에는 좀 나간다. 


점원과 스페인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려서 골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문아래 보이는 곳은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를 날고 있다.



외부 온도는 영하 53도... 


Enjoy! 



서울로 가기위해 다시 이스탄불로...  



이번 여행을 같이 한 친구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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